상급 북셀프 vs 하급 톨보이... 저음/취향/ 그리고 차이나는 클래스 (포칼 소프라 시리즈와 유토피아 시리즈에 대한 고찰)
2020.02.04
필자가 예전 프로 오디오 분야에서 일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기존에 작업해 보지 않은 특수한 악기(8현 베이스기타)에 대한 녹음을 진행할 때였는데, 전임 엔지니어가 세팅해 놓은 공간계 이펙터 값을 기록해두기 위해 각종 수치를 전용 시트에 열심히 적고 있었죠. 하지만 나중에 다른 스튜디오에서 그 수치값을 적용했을 때, 전혀 다른 뉘앙스의 소리가 만들어져서 크게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큰 변수는 엉뚱하게도 해당 연주자의 컨디션이었습니다. 수치를 기반하되, 당일 연주자의 상태 및 그 결과치를 잘 모니터링했다면 있을 수 없는 실수였지요.
프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흔히 돌던 썰이 하나 있는데요, 각 주파수에 대한 특성을 수치로 기억하는 것은 하수이고, 몸으로 기억하는 것은 고수라는 것입니다. (물론 "고수"들은 당연히 수치에 대한 이해정도는 기본으로 깔고 가지요.)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니 절대적으로 동일한 이야기를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스피커를 예로 들었을 때, "이 스피커는 크로스오버가 몇 Hz이기 때문에 피크와 딥이 심하다."는 식의 해석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크로스오버 주파수가 형성되는 포인트에서의 각 주파수 대역의 슬로프 양상, 드라이버 유닛 각각의 위상 정확도나 특성, 하위 주파수 대역이 인클로저 설계에 의해 얼만큼 변형되는지에 대한 기술사항 등 수 많은 변수가 존재하지요. 물론 이러한 기술 변수를 줄줄이 읇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청감상 차이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이엔드 급 오디오 제품을 오로지 "감"으로만 만들 수는 없지만, 오로지 수치만으로 자로 잰 듯 만든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청감튜닝이라는 것이 제작자의 몫이라면 청감 감상이라는 것은 우리 오디오파일의 몫이 됩니다. 특히 스피커, 그 중에서도 크로스오버 설계에 대한 것은 청취자의 경험치가 녹아든 온전한 감상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해당 스피커의 사운드가 좋다/싫다 평가하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여러 오디오파일들의 경험치와 평가로 정립된(또는 세월의 검증을 받은) "바로 그 스피커의 특성"은 상당히 객관적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가령, B&W 800시리즈 스피커가 진득하고 어두운 사운드이며, ATC 스피커들이 맑고 투명한 소리라고 이야기한다면 여러분은 납득하실 수 있겠습니까? 맑고 투명한 그리폰 / 어둡고 답답한 골드문트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특정 브랜드와 제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식"은 이렇듯 많은 오디오파일의 청취경험치와 세월의 검증을 거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서론이 좀 길었는데요, 오디오 제품의 수요자이자 음악 감상자인 우리 오디오파일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문성이 아닌 객관성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떤 스피커를 청음했을 때, 좋고 싫은 것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장점이 단점 때문에 가려져서는 안될 것이며, 반대로 단점이 장점과 함께 희석되어버리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특히나,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톨보이 스피커와 북셀프 스피커의 비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여러분은 톨보이 스피커의 장점을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북셀프 스피커에 비해 깊게 떨어지는 저음 한계주파수, 보다 풍성한 저음의 양감 등을 일차적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연유로 기대할 수 있는 음악적 특성도 몇 가지 존재합니다. 사운드 스테이징의 가상 공간이 물리적으로 확장되는 듯 하며, 따라서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스케일이 보다 웅장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각종 저음악기들의 사실감이 증폭되기 때문에 음악에 존재하는 비트가 보다 감성적으로 크게 어필할 수 있습니다. 귀가 아닌 몸으로 느껴지는 저음에의 쾌감은 분명 가치있는 펙트이지요.
그런데 동급 기준으로 보았을 때, 톨보이 스피커가 북셀프 스피커보다 무조건 우월한 건 또 아닙니다.
북셀프 스피커가 동급 톨보이 스피커와 비교했을 때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정위감"인데, 양 스피커 사이, 그리고 한 가운데에 재생음악의 음원(악기, 보컬)들이 또렷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고, 마치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음원과의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말하지요. 사실, 하이엔드 급 스피커에서 보자면 이러한 정위감 조차도 동급이라면 톨보이가 더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위상(Phase)"특성의 정밀함 때문인데요, 유닛의 개수가 많아질 수록 각 유닛의 위상 특성이 아주 정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이엔드 급에서는 유닛의 퀄리티도 수준급으로 보장이 되기 때문에 유닛이 많아진다고 해도 이러한 위상특성이 크게 저해되는 일은 드뭅니다. (말 그대로 "하이엔드 급"스피커에 국한되는 이야기입니다.)
초 하이엔드 급이 아닌 이상, 톨보이 스피커는 동급 북셀프 스피커에 비해 위상 특성이 안 좋아질 변수가 많습니다.
우선, 발음체(드라이버 유닛)의 위치가 가상의 음원축(동축)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 포지션도 일체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게다가 각 유닛별 특성차이가 조금씩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가장 이상적인 유닛 형태는 "광대역 풀레인지"입니다. 물론,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위상이라는 것이 좀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이해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가령...
합창(화음)이 아닌 제창(유니즌)을 노래하는 합창단이 있다고 칩시다.
노래 가사를 명확히 전달(정위감)하고자 한다면 합창단원의 인원수(드라이버 유닛 수)가 적을 수록 유리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노래할수록(유닛이 많을수록) 가사전달은 어려워집니다. 물론 아주 고도로 훈련된 합창단원들(초 하이엔드 스피커의 드라이버 유닛?)이라면 그나마 좀 낫겠지요. 게다가 각 인원별 사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별이 다를 수도 있고, 각기 입술을 떼는 타이밍도 다릅니다. 고음을 잘 내는 단원도 있고(트위터), 저음을 잘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우퍼)
심지어 모든 사람이 지휘자(혹은 녹음 마이크)와 같은 거리에 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더하기에, 사운드는 웅장할 수는 있어도, 정교한 하나의 소리를 내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소리의 방향과 타이밍 등 시공간적 특성을 그 해당 사운드의 위상(Phase)이라고 이해하시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유토피아(디아블로 유토피아 포함)미드/우퍼의 플라워 마그네틱 모터 시스템
북셀프 스피커가 동급의 톨보이 스피커보다 유리한 점이 있는 반면, 불리한 점도 분명 존재하지요.
위에서 언급한 톨보이스피커의 장점이 동급 북셀프 스피커에서는 단점으로 새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의 명제도 당연히 성립하겠지요. 여기에서 약간 북셀프 스피커의 편을 들자면, 앰프와 공간 운용에 있어서 보다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 정도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톨보이를 100% 울려내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북셀프를 120% 드라이빙해내는 조건을 만드는 일보다 어려운 법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에서는 톨보이 스피커의 장점이 많이 퇴색될 수 있겠지요.
하물며, 급이 다른 톨보이와 북셀프를 비교한다는 관점에서, 우리는 좀 더 객관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급의 톨보이 vs 상급의 북셀프... 포칼에서는 Electra 1038Be(또는 칸타 시리즈?) 와 Sopra No.1, 혹은 Sopra No.3와 Diablo Utopia EVO 간의 평가를 이야기 할 수 있겠지요. 특히나 소프라3와 디아블로 유토피아 EVO와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기에 상당히 무리가 따릅니다.
소프라3는 대형기 스피커로서의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디아블로 유토피아 EVO와 비교했을 때 저음과 사운드 스케일에 있어서 우위를 가집니다. 그런데 이건 소프라3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형 톨보이"이기 때문에 가지는 장점입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 혹은 강한 비트의 현대음악을 감상한다면 분명 더 좋은 느낌이 있지요. 저음의 양감과 깊이감, 그리고 그에 따라 수반되는 사운드의 스케일... 이것이 소프라3가 디아블로 유토피아보다 잘 하는 것입니다. 필자만 하더라도, "나는 오로지 오케스트라만 듣는다."싶은 분들에게는 주저 없이 소프라3를 권합니다.
하지만, 같은 급수끼리 보더라도 차이가 나는 정위감과 음의 섬세한 표현에 있어서는 소프라 3를 디아블로와 비견하는 것이 상당한 반칙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 해상력에서부터 차이가 크며, 보컬의 투명함이나 실키한 질감의 표현, 호소력 짙은 중음역과 그 순도, 범접할 수 없는 사운드의 개방감과, 무엇보다도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정위감과 이미지 포커싱 등등, 말 그대로 "차이나는 클라스"만큼은 상호 비교가 불가하지요.
저음의 평가기준에 양감과 깊이감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저음에도 해상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질감과 타이밍이 평가됩니다. 그런 면에서 또 보자면 디아블로유토피아의 저음 퀄리티(양감과 스케일이 아닌)가 소프라보다 떨어진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는 다른 것 없습니다. 그냥 클래스가 다른 두 제품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좌로부터, Sopra No.3 / Maestro Utopia EVO / Scala Utopia EVO / Diablo Utopia EVO -와인오디오 제 1청음실
배기량과 자동차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 비례하긴 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은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2천cc 터보 엔진을 얹은 작은 스포츠카와 3.3리터 엔진의 세단이 가격이 비슷할 수는 있습니다. 세단의 장점(정숙함, 승차감)등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세단이 스포츠카보다 우월한 차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차라는 물건의 본질이... 빠르게 잘 달리는 것이니까요.
다시 강조하지만, 무조건 스케일 큰 음악을 고집하는 분들께는 "북셀프"인 디아블로 유토피아 EVO만을 권하지 않습니다. 저같아도 소프라3로 오케스트라 듣는 것이 더욱 좋게 들릴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외의 조건하에서 "유토피아"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어떤 스피커라도 동사의 아랫급 스피커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좋다 좋다 하니까 끝없이 좋기만 한" 그런 제품은 없습니다. 소프라 시리즈를 포함하는 모든 오디오 제품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디아블로 유토피아 EVO도 상급의 다른 스피커와 비교할 때 피해갈 수 없는 펙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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